9.20.화
해외에서 퀴어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 유럽 대도시라 하더라도 혐오범죄는 어디에나 있고, 무시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은근 많고 쎄다. 그래서 다들 빨리 걷는다. 빨리 걸으면 주변을 무시하기도 쉽고 불편한 거리도 빨리 지나가버릴 수 있다.
게이들은, 특히 사람 많은 거리에서 대체로 빨리 걸어서 (전부 그런건 아님 : 이런 설명 굳이 안 덧붙여도 되겠죠?) 이런 걸 보고 게이워킹이라고 한다. 아마도 불안과 자기방어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친구들이 맨날 게이워킹 할 때마다 놀려서 미안… 난 빨리 안 걸어…
그냥 친구들 생각이 나서 적어봄
처음에 여기 날씨가 너무 적응이 안 돼서 힘든 거에요. 제 여행은 2달간 이어지는데 캐리어는 작고 여름옷도 같이 들어있어서 옷도 별로 없었어요. 맨날 세네겹씩 껴입다가 고민 끝에 빈티지 옷가게를 가서 옷을 샀어요. 베를린 살던 친구 말로는 Humana가 제일 싸다고 해요. 이것도 막 싼 건 아닌데 괜찮은 가격에 많이 살 수 있어요. 그러니 베를린 가면 빈티지 쇼핑하기를 추천~
그리고 호스텔 같은 방에서 묵던 캐나다 애랑 친구가 됐어요. 막 잘 모른다고 어리버리해하길래 저도 잘 모르는데 이곳저곳 같이 갔어요. 이 친구는 인생을 너무 철저한 계획과 강박 속에 살아서 이번 여행동안은 흘러가는 대로 가고 싶다(go with the flow)고 했어요. 그래서 전부 제 충동대로 했답니다.
베를린 왔으니 클럽을 가야겠다면서 제가 가려던 테크노 파티에 따라왔어요. 막 가면서 21th night of september 노래 들으면 앞으로 이 클럽이 생각날 거라고 얘기했어요. 같이 갔던 클럽은 AVA라고 별로 유명한 곳은 아닌데 쨍한 테크노가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 안 많고 오히려 좋기도 했어요. 두유리멤버~
9.22.목 밤 12시 반
berlin... hamburg... 독일식으로 발음해보면 함부엌....
오늘의 베를린은 아주 재밌었다. 호스텔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랑 같이 다녀보았다. 나쁘지 않았고, 평소에 안해봤을 법한 대화를 어색하게 나누다가 어느샌가 급 가까워짐을 느꼈다. racism에 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이를 겪은 모두가 살아가는 방식은 그들의 강인함을 잘 보여준다.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빈티지 자켓도 샀다. 추우니까... whatever...
9.23.금
오늘 친구를 보러 가는 길에 트램이 멈췄고 며칠째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안되니 구글맵도 우버도 전동퀵보드도 안되고, 트램은 자꾸 사라지고 택시 줄은 너무나도 길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핸드폰가게로 뛰어들어가 유심에 문제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처음 유심을 살 때 사기를 당해버렸던 것이었다. 이걸 알고 나니 너무 분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나는 그때 한시간밖에 못자서 정신이 어벙벙한 상태였고 많은 걸 제대로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상대로 거짓말을 치며 뻔뻔하게 굴던 그 직원 얼굴과 함께, 되지 않는 인터넷 때문에 겪어야했던 수많은 불편이 떠올랐다. 대가리가 핑돌아버리는 줄 알았지만 이와중에 현금 결제를 유도했던 그가 사기를 쳤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 다시 가도 소용이 없을 것만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말도 안 되지만 현금 결제 유도 방식이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다.
이 죽일 놈아…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오늘 명길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음하하 이 시발놈아!!!
새벽 5시
we don't do it every day. we just do it every night. (우리가 이짓을 맨날 하는건 아냐. 밤마다 하는거지.) : 클럽에서 만난 애들이 했던 말. |